덕윤이를 만난날



참 맛이 있는 기억이 있었다
이 십 여 년이란 긴 헤어짐 끝에 서로를 확인할 수 있는
목소리는 또 다른 언어였다

어린 시절
집 앞개울에서도 거슬러 헤엄치기가 쉽지 않음을 잘
알고 있음에도
우리들의 듬성듬성한 기억의 역류는
찻잔 식기보다 쉬운 일이었다
그 날 우리는 청량리 여로 다방의 구석진 어두움도 즐겨 보았고
오기에 셔츠를 벗어 던진 채 달려들던 종로경찰서의
취조실에도 가보았다
어느 겨울 밤
머리 깎고 산으로 들어갔던 친구가 불쑥
뒷 주머니에 꽂고 돌아온 소주병도 나누었다
두어 평 남짓한 구로동 벌집에서 몇 날 몇 일을 죽치
던 속 타는 담배 연기가 좋았고
가난보다 우정에 충실하고자 했던 합정동 어느 술집의
퀴퀴한 곰팡이 냄새도 싫지 않았다
그때 우리는 모든 것을 가지고 있었다
방황도 좌절도, 꿈도 야망도, 사랑도 우정도

이제 먼지 쌓인 탁자 위에 푸석푸석한 세월을 밀치고 나니
우리는 아이 둘과 마누라 하나씩을 가지고 있었다
참 좋은 기억 하나 곁들여서


| 어느 술집에 사는 여자
| 달빛나라